1990년 기증유물(호주 해군 수병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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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호주 해군 수병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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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 인도군 기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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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로, 인도군이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인도군 기념패이다. 검은색 방패형 목판 형태이다. 6·25전쟁 당시 인도는 중립국임에도 '세계의 평화와 자유를 수호한다'는 유엔 결의에 따라 의료지원국 중 최대 규모의 의료지원부대를 파병했다. 제60공수야전병원부대는 1950년 11월 20일 부산에 상륙해, 최전선에서 근무했다. 1954년 4월 철수까지 군인과 민간인 22만여 명을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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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 유엔군 기념 페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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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6·25전쟁 참전 유엔군 기념 페넌트(깃발)이다. 페넌트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필리핀군과 관련된 기증품이다. 필리핀은 6·25전쟁 당시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이 참전한 국가이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지상군 7천420명을 파병했다. 주요 전투는 1951년에 벌어진 율동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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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필리핀군 제20대대 전투단 기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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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필리핀군 제20대대 전투단 기념패이다. 1951-1952년 6·25전쟁 당시 필리핀군 제20대대의 참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하였다. 필리핀은 6·25전쟁 당시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이 참전한 국가이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지상군 7천420명을 파병했다. 주요 전투는 1951년에 벌어진 율동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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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미군 침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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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로, 1944년에 제작된 미군 침낭이다. 국방색이며, 울 소재로 제작되었다. 보온성이 뛰어나진 않아서, 영하의 날씨에서 사용하기엔 부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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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구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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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로, 미군에서 지급한 구급대이다. 야전에서 개인이 응급 처치를 하기 위하여 휴대하는 용도로 사용되며, 압박 붕대와 정제 약품 등을 넣었다. 파우치 뒷면에 후크가 있어서 벨트에 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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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 노르웨이군 기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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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르웨이군 기념패이다. 황색 도형패 형태이며, 뒷면 상단에 'H M KONGENS GARDE(Hans Majestet Kongens Garde, 왕실 경비병 대대)', 하단에 'NORWEGIAN KOREAN VETERANS(6·25전쟁 노르웨이 참전용사)'라 새겨져 있다. 노르웨이는 6·25전쟁 당시 의료진과 경비인력 포함 623명의 의료지원단을 파견해 노르웨이 야전병원 NORMASH(Norwegian Mobile Army Surgical Hospital)을 운영하였다. 노르웨이 야전병원은 6.25 전쟁 당시인 1951년 7월 19일부터 1954년 11월 10일까지 운영되었으며, 9만 명 이상의 환자를 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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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호주 공군 제77비행대대 기념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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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로, 호주 공군 제77비행대대 기념패이다. 방패형 목판 형태로, 앞면에 호주 공군 제77비행대대를 의미하는 문장이 붙어 있다. 일본 이와쿠니 기지에 주둔하고 있던 호주 제77비행대대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7월 2일부터 1954년 10월 철수할 때까지 F-51 무스탕과 미티어-8(일명 쌕쌕이) 제트기 전투기를 동원해 1만9여회 출격했다. 뛰어난 작전수행 실적으로 1951년 11월 1일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았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하고,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하였다. 호주는 6·25전쟁 기간 중 2개 보병대대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4척의 함정, 그리고 1개 비행대대와 1개 수송기편대를 파견하는 등 연인원 17,164명을 참전시켰다. 주요 전투로는 영유리 전투, 정주-박천 전투, 가평 전투, 마량산 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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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용사 서명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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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기증유물로, 6·25전쟁 참전용사 서명 패널이다. KWVA(미국 한국전참전용사협회) 뉴욕 지부에서 6·25전쟁 참전용사를 환영한다는 문구와 뉴욕 지부 주소가 적혀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 섬여과 함께 전쟁기념사업회 이병형 초대 회장의 서명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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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 호주 군함 사진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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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기증유물로, 6·25전쟁 참전했던 호주 군함인 HMAS Condamine 함 사진 액자이다. HMAS Condamine 함은 리버급 호위함으로, 1946년 2월 22일 군함으로 취역했다. HMAS Condamine 함은 6·25전쟁 당시인 1952년 8월 ~ 1953년 3월까지 한국 해역에서 22,000마일 이상 운항했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하고,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하였다. 호주는 6·25전쟁 기간 중 2개 보병대대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4척의 함정, 그리고 1개 비행대대와 1개 수송기편대를 파견하는 등 연인원 17,164명을 참전시켰다. 주요 전투로는 영유리 전투, 정주-박천 전투, 가평 전투, 마량산 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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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한 호주군의 유품: 사진 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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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기증유물로,6·25전쟁 참전한 호주군 연대 제2대대 소속인 LEON JL DAWES 이등병의 유품인 사진 액자이다. LEON JL DAWES 이등병은 1953년 7월 26일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하고,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하였다. 호주는 6·25전쟁 기간 중 2개 보병대대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4척의 함정, 그리고 1개 비행대대와 1개 수송기편대를 파견하는 등 연인원 17,164명을 참전시켰다. 주요 전투로는 영유리 전투, 정주-박천 전투, 가평 전투, 마량산 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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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기증유물(6·25전쟁 참전한 호주군의 유품: 조개껍질 8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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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기증유물로,6·25전쟁 참전한 호주군 연대 제2대대 소속인 LEON JL DAWES 이등병의 유품인 조개껍질 89점이다. LEON JL DAWES 이등병은 1953년 7월 26일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호주는 미국에 이어 2번째로 참전을 결정하고, 육·해·공군을 모두 파병하였다. 호주는 6·25전쟁 기간 중 2개 보병대대와 항공모함을 포함한 4척의 함정, 그리고 1개 비행대대와 1개 수송기편대를 파견하는 등 연인원 17,164명을 참전시켰다. 주요 전투로는 영유리 전투, 정주-박천 전투, 가평 전투, 마량산 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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