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의료지원선 유틀란디아호 승선의사 티케 클라렌티우스가 직접 촬영한 영상으로 1953년 유틀란디아호의 의료활동 및 당시 대한민국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1972년 11월 11일 국방부에서 제작한 대북심리전방송 <자유의 소리>의 음원 테이프이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의 주요 조항을 언급하며 ‘평화통일 3대 원칙’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으며 남북 합의에 따라 본 방송을 끝으로 <자유의 소리> 방송을 종료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경향신문(1972년 11월 11일)
1972년 4월 수도사단(맹호부대) 민사참모부에서 제작한 심리전 방송 테이프이다. 테이프 A면에는 약 19분 분량의 음성이 담겨 있으며, 초반의 (1)아군 사기증진용 방송과 후반의 (2)적군 귀순 권고 방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1)은 전투 과정과 전투 종료 단계로 구분하여 아군의 노력을 치하하고 끝까지 분투할 것을 권하는 육성과 군가가 수록되어 있다. (2)의 경우 적군인 북베트남군 및 베트콩에게 베트남어로 귀순을 권고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며, 각 권고 음성의 뒤에는 동일 내용의 한국어 음성이 실려 있다. 사진 출처: 월남전과 한국 <안케고지 중대전술기지>
1970년 8월에 촬영된 16mm 영화필름 3점으로, 원본 필름이다. 당시 베트남의 남북을 연결하는 1번 국도의 전경과, 다낭(Da Nang)에서부터 판랑(Phan Rang) 구간의 치안을 지키는 주월한국군의 활동상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전경으로는 육군 수도사단(맹호) 및 제9사단(백마), 해병 제2여단(청룡) 등 국군 부대들의 의료지원, 농경지원, 구호물자 지급, 건설지원(사원·교회·도로 등), 태권도 보급 등 민사(民事)작전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상이 촬영된 1970년은 연합군의 철수방안이 구체화되던 시기로, 남베트남 지역의 안정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당시 주월한국군의 당면과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당시 주월한국군이 현지인들의 편의를 충족시키고 그들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인도적 지원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1970년 8월에 촬영된 16mm 영화필름 3점으로, 원본 필름이다. 당시 베트남의 남북을 연결하는 1번 국도의 전경과, 다낭(Da Nang)에서부터 판랑(Phan Rang) 구간의 치안을 지키는 주월한국군의 활동상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전경으로는 육군 수도사단(맹호) 및 제9사단(백마), 해병 제2여단(청룡) 등 국군 부대들의 의료지원, 농경지원, 구호물자 지급, 건설지원(사원·교회·도로 등), 태권도 보급 등 민사(民事)작전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상이 촬영된 1970년은 연합군의 철수방안이 구체화되던 시기로, 남베트남 지역의 안정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당시 주월한국군의 당면과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당시 주월한국군이 현지인들의 편의를 충족시키고 그들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인도적 지원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1969년 9월에 촬영된 35mm 영화필름으로 원본이다. 승룡15호 작전(미국측 명칭 Operation Defiant Stand)에서 배리어 섬(Barrier Island) 상륙작전을 준비하는 한국군 청룡부대와 미 해병대의 장면이다. 당시 작전은 국군 해병대가 1950년 인천상륙작전 이후 최초로 실시하는 한·미 해병 합동 강습상륙으로서 역사적인 의미가 컸다. 상륙을 앞두고 긴장되지만 카메라를 향해 애써 웃어 보이는 장병들의 복잡한 분위기가 선명하게 담겨 있다.
국군 맹호부대의 장병들이 정글에서 작전을 하는 장면으로, 시기와 장소는 불명이나 영상 속에서 사용되는 장비로 미루어 1967년 즈음으로 추정된다. 미군 UH-1B 헬기에 의한 공중기동, 부상병의 후송, 소각된 정글, 험지를 극복하는 국군 병사들과 종군기자의 모습이 담겨 있다. 베트남전쟁 중 국군의 작전 상황을 요약하는 영상으로서 가치가 높다.
1969년 8월 승룡14호 작전(8. 1.~ 8. 23.)이 종료되던 시점(장소 : 호이안 디엔반 청룡 6중대 부근), 한국군 청룡부대가 파손된 차량을 구난하던 중 베트콩이 매설한 부비트랩에 의해 2명 전사, 9명의 중상자가 발생한 장면이다.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이들을 구호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어 전쟁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의 편집으로 보존된 것이 거의 없는 아군의 피해 장면이라는 점에서 희소성 역시 매우 높다. 당시, 국군의 사기 저하 및 국민들의 불안감 조성을 한다는 이유로 take off 되어 처리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못하였다. 본 영상은 자체 추적조사로 베트남전쟁 참전자 모임을 통해 당시 폭발로 부상을 입은 운전병(안효상 氏)의 증언을 확보하여 영상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1970년 8월에 촬영된 16mm 영화필름 3점으로, 원본 필름이다. 당시 베트남의 남북을 연결하는 1번 국도의 전경과, 다낭(Da Nang)에서부터 판랑(Phan Rang) 구간의 치안을 지키는 주월한국군의 활동상을 담고 있다. 구체적인 전경으로는 육군 수도사단(맹호) 및 제9사단(백마), 해병 제2여단(청룡) 등 국군 부대들의 의료지원, 농경지원, 구호물자 지급, 건설지원(사원·교회·도로 등), 태권도 보급 등 민사(民事)작전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영상이 촬영된 1970년은 연합군의 철수방안이 구체화되던 시기로, 남베트남 지역의 안정을 확립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당시 주월한국군의 당면과제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당시 주월한국군이 현지인들의 편의를 충족시키고 그들을 존중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적으로 묘사하여,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인도적 지원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