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유인석

  • 성별

  • 시대

    조선시대

  • 비고

  • 키워드

    흉상, 의병장, 호국인물, 조선

약력
    . 출생-사망: 1842-1915
    . 1910. 13도의군도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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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유인석(柳麟錫, 1842~1915)은 조선 왕조 말기의 의병장이다. 본관이 고흥(高興), 자는 여성(汝聖), 호는 의암(毅菴)이다. 갑오경장 이후에 친일내각에 반대하고 의병대장으로 충주, 제천 등지에서 싸웠으나 의병 세력이 약화되어 해산시키고 말았다. 1900년 7월 의화단의 난을 피하여 귀국한 뒤로는 양서지역 각지를 돌며 이진룡(李鎭龍)·백삼규(白三圭) 등의 의병장을 배출하였다. 1907년 고종의 퇴위와 정미7조약 체결을 계기로 국내활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 연해주 망명을 결심하였다. 1908년 7월, 망명길에 올라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 이곳에서 이상설(李相卨)·이범윤(李範允) 등과 함께 분산된 항일세력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꾸준히 노력하였다. 1910년 연해주 의병세력의 통합체인 13도의군(十三道義軍)이 결성되어 이상설·이범윤·이남기(李南基) 등에 의하여 도총재(都總裁)로 추대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무력항쟁을 펼치려 하였으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의 항일운동 탄압으로 13도의군은 와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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