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123J 수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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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23의 개발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 공군(USAF)이 단거리 이착륙(STOL) 능력을 갖춘 전술 수송기를 필요로 하면서 시작되었다. 1948년 미국 체이스(Chase Aircraft) 사가 개발 중이던 XCG-20 글라이더를 기반으로 1950년 XC-123 및 XC-123A 시제기를 제작하였으나, 경영 문제로 인해 1953년 미국 페어차일드(Fairchild Aircraft) 사가 생산권을 인수하여 양산형인 C-123B를 최초로 실전 배치하였다. C-123J는 극저온 환경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C-123B를 개량한 모델로, 엔진과 기체를 저온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하도록 개조하였으며, 랜딩기어에 탈부착 가능한 스키 키트를 장착할 수 있어 미 공군의 북극 지역 기지 보급 임무에 활용되었다. 대한민국 공군은 노후화된 C-46D 및 C-54 기종을 대체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C-123K와 C-123J를 인수하여 운용하였다. 도입된 C-123은 병력 및 물자 수송, 야간 조명탄 투하 임무 등에 활용되었으며, C-130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까지 한국 공군의 주요 전술 수송기로 운용되었다. 이후 1994년 12월 전량 퇴역하였다.

500MD 다목적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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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맥도널 더글라스(McDonnell Douglas)사에서 개발한 다목적 경량 헬리콥터이다. 휴즈(Hughes)사에서 개발한 민간용 헬기인 휴즈-500(Hughes-500)을 군용으로 개량한 것이다. 1970년대 초반, 대한민국은 북한의 기갑전력에 대응할 공격형 헬기가 부족하여 미국의 500MD의 도입이 적합하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단순 수입이 아닌 국내 항공산업 발전과 기술 이전을 고려하여 1976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 대한항공이 직접 500MD 헬리콥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하였다. 500MD는 약 250대가 제작되어 주로 육군과 해군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고 2017년 8월 1일 이후 최신 기종으로 점진적 교체되었다.

C-119G 수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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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119 플라잉 박스카는 미국 페어차일드(Fairchild Aircraft)사에서 개발한 쌍발 프로펠러 군용 수송기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개발된 C-82 패킷(Packet)의 성능을 개선한 기체이다. 1947년 C-119A가 첫 비행에 성공한 후, 개량형인 C-119B가 1949년 실전 배치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1953년부터 C-119G는 다양한 임무에서 운용되었다. C-119G는 병력 및 장비 수송, 공수 작전, 보급품 공중 투하 등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으며, 후방의 화물 도어를 통해 낙하산 부대 투입 및 대형 화물 공중 투하가 가능했다. 최대 62명의 병력 또는 약 10,000kg의 화물을 적재할 수 있었으며, 필요에 따라 부조종사가 탑승하는 조종석과 추가 연료 탱크를 장착할 수도 있었다. C-119는 6·25전쟁 당시 공중 보급 및 병력 수송 임무에 투입되었으며, 특히 장진호 전투와 문산리 공정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쟁 이후 미 공군은 C-123 프로바이더(Provider) 계열 수송기로 기종을 교체하면서, C-119G를 군사원조(MAP, Military Assistance Program) 프로그램을 통해 동맹국에 인도했으며 일부 기체는 AC-119G 건쉽(Gunship)으로 개조되어 베트남전에서 야간 공중 화력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1974년 미 공군은 C-119 계열 기체를 전량 퇴역시켰다.

B-52D 전략폭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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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잉(Boeing)사에서 개발한 전략 폭격기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전방 기지 없이도 대륙 간 작전이 가능한 폭격기를 미 공군이 요청함에 따라 설계를 시작하였다. 1952년 시제기 YB-52의 첫 비행 성공 후, B-52A 기체를 제작하여 시험 평가를 마쳤다. 첫 운용 기체인 B-52B가 1955년 실전 배치되었다. B-52D는 기존 기체들의 핵무기 운용 능력 대신 융단폭격을 위해 폭장량을 증가시킨 기종으로, 내부 폭탄창 확장과 외부 무장 파일런을 추가해 최대 108발의 227kg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다. 또한 방공망 대응을 위해 전자전 장비(EW, Elctronic warfare)와 방해장비가 강화되어, 베트남 전쟁 당시 미 공군의 주력 폭격기로 운용되었다. 특히 라인배커Ⅱ 작전에서 15,000여 톤의 재래식 폭탄을 투하하였으며, 후방 기관총으로 북베트남 공군의 MiG-21 전투기 2기를 격추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1983년 10월 마지막 B-52D가 퇴역하였으며, 오늘날 미 공군은 후속 기종인 B-52H를 운용하고 있다.

UH-1H 다용도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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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벨(Bell)사에서 개발한 다목적 헬리콥터이다. 1960년대 후반,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안보 상황을 고려해 한국군은 다목적 헬리콥터 도입을 추진하였다. 당시 UH-1 시리즈는 한국의 군사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목적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육군은 1968년 UH-1D 6대로 제21기동항공중대를 창설하였고 1971년부터 개량형인 UH-1H 헬기를 도입하여 전술 수송, 구조 작업, 구급 임무 등 다양한 군사적 요구를 충족시켰다. 기체 노후화 및 후속 기종의 도입으로 2020년 국산 헬기인 ‘수리온’에 모든 임무를 인계하고 퇴역하였다.

T-103 훈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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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03 훈련기는 러시아 일류신(Ilyushin) 설계국이 개발한 단발 프로펠러 항공기 IL-103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공군이 도입한 초등훈련기이다. 1995년 개발된 IL-103은 내수용 모델이 러시아제 엔진을 탑재한 반면, 수출용 모델은 미국제 엔진을 장착하여 1998년 러시아 제작 항공기 중 최초로 미국 연방항공청(FAA) 감항인증(Airworthiness Certificate)을 획득하였다. 대한민국 공군은 2005년부터 기존 T-41 훈련기를 대체하기 위해 불곰사업의 일환으로 T-103을 도입하였다. 총 41개 차수에 걸쳐 58,000시간의 비행을 수행하며 약 2,200명의 조종사를 양성하였다. T-103은 입문 비행 훈련에서 기본 조종술 및 항공기 운용 능력 습득을 위한 기체로 활용되었으며, 기존 T-41보다 기동성이 향상되었으며, 전자 계기를 활용하여 보다 정밀한 조종 훈련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러시아 항공기의 특성상 부품 조달이 원활하지 않아 유지보수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국산 초등 훈련기의 개발 및 운용 효율성을 고려하여 대한민국 공군은 2018년 KT-100 초등훈련기를 도입하면서 T-103을 전량 퇴역시켰다.

선양 J-6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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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양 항공기공업 유한공사가 생산한 1인승 초음속 전투기로 구소련 MiG-19 전투기의 면허생산 기종이다. 1959년 초도 비행에 성공하였으며 1962년부터 인민해방군 공군에 실전 배치되었다. 구소련의 MiG-19는 1968년 이후 생산 중단했으나 J-6는 1986년까지 약4,500여 기를 생산하였으며, 중국의 우방국에는 F-6라는 이름으로 수출되었다. 중국 인민해방군 공군은 1990년대 말 J-6 기종을 완전히 퇴역시켰으나, 수입국 중 하나인 북한은 현재까지 2선급 전투기로 운용하고 있다. 전시된 기체는 1983년 2월 25일 북한 공군 조종사 이웅평 상위가 개천비행장을 이륙한 뒤 대한민국으로 귀순 당시 조종하였던 기체이다.

1990년 기증유물(호주 해군 수병 흑색 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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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호주 해군 수병 흑색 넥타이(RAN SEAMAN'S BLACK SCARF)이다.

1990년 기증유물(호주 해군 수병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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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호주 해군 수병끈이다.

1990년 기증유물(호주 공군 장교복 (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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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호주 공군 장교복(상의, 하의)이다. 영문 명칭은 "RAAF OFFICER'S FOUR POCKET TUNIC & TROUSERS"이다. 왼쪽 가슴의 주머니 위에 약식과 "RAAF(호주 왕실 공군)"을 뜻하는 독수리 모양의 휘장이 붙어 있다.

1990년 기증유물(꽂을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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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기증유물로, 꽂을대/집(CLEANING ROD, M1)이다. 총신(gun's barrel)의 내부를 청소하는데 사용하는 화기 유지 도구이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콜롬비아 군이 사용한 것이다. 콜롬비아는 6·25전쟁 때 전투 부대를 파견한 16개국 중 하나로, 라틴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이다. 1개 보병대대와 1척의 프리깃함을 파견하였으며, 1951년 6월부터 참전기간 동안 연인원 5,100명을 파병했다. 주요 전투로는 400고지 전투, 180고지 전투, 불모고지 전투 등이 있다.

1991년 기증유물(타이거여단 문서 20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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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기증유물로, 타이거여단 관련 문서 20매로, 타이거여단의 활동 상황 등이 담겨 있다. 표지 오른쪽 상단에는 "여단전적통계·제계획 및 상황도표"란 문서 제목이, 왼쪽 하단에는 "유격군 타이거여단 여단장 박상준"란 기증자 정보가 적혀 있다. 타이거 여단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부 소속 8240부대 예하 소속으로, 1952년 2월 창설돼 휴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1954년 2월 해체했다. 무기 및 식량 보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서해의 군사적 요충지인 교동도와 용매도 방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