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술자
백락수
- 구술주제
박격포소대장으로서 겪은 6·25전쟁
- 구술일자
2022-09-05
- 영상시간
7분 51초
- 구술장소
전쟁기념관 6·25전쟁실 2
- 주관기관
전쟁기념관
-
소개
백락수 구술자는 갑종 5기 출신으로 6·25전쟁 발발 당시에 2사단 32연대 박격포 소대장으로서 백마고지 및 저격능선 전투에 참전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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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념관은 2020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6·25전쟁 참전용사 구술영상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였다. 구술영상은 이후 전쟁·군사 관련 학술연구 및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며 또한 중·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2022년 올해는 전쟁 직전부터 정전 체제까지 전 시기를 포괄할 수 있는 대상자로 선정하였고, 특히 백마고지 전투 70주년을 맞이하여 전선교착기에 해당되는 '고지전' 중심의 참전자 및 관련자를 선정하였다. 구술영상 인터뷰 질문 내용 역시 구술자 분들의 개인의 위치와 역할에 맞게 진행되었으며 서로 겪으셨던 다양한 전쟁의 기억을 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구술자 약력
성명백락수
- 1948. 신의주 동중학교 재학 중 월남
- 1950.12.23. 제2국민병 입대
- 1950.3. 8사단 18연대 입대
- 1950.5.27. 보병학교 포병과 입교
- 1951.11.12. 2사단 32연대 4중대 박격포 소대장
- 1958.7.30. 전역
- 1960~1986 (주)백조섬유, (주)성열산업, (주)백조제모 대표
- 1993. 대한예수장로회(통합) 기관장과 서기 활동 등 장로로 활동하다가 70세가 넘어 은퇴
- 현재 이북5도청 명예군수(평안북도 의주군)
구술영상 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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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락수>
*면담자: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면담자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백락수 : 백락수. 33년 4월 15일. 평안북도 신의주, 신의주 옆에 의주. 의주에서 태어났어요. 거기서 여덟 살 때 만주로 들어갔어. 그때는 왜 만주로 들어갔냐 하면 우리 형님이 징병. 일본, 일본군인 징병 해당자야. 소집을 당할까 봐 거기로 도망가다시피 (이주했어.) 면담자 : 6·25전쟁 발발 당시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 처해 계셨나요? 백락수 : 우리 한국 사회 70년 사에 가장 험난한 그 파란 속에서 그걸 다 겪으면서 그런 저기서 헤어나고 살아왔다고요. 그때의 그 당시에 고난 길은 다 찾아다니면서 말이에요. 만주도 들어가지 않아야 될 것 들어가서 고생하고, 또 남아가지고서 여기 또 이북에서 또 공산당 가서 쫓겨가지고. 38선 넘어오면 고생하고 넘어서 피란살이로 고생하고, 겨우 안정돼서 좀 살만하니까 6·25 사변 났고. 면담자 : 전쟁 발발 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백락수 : 그때부터 피란길을 걸었는데 그 한강 다리 건너가서, 거기서 한강, 제1한강교 끊는 거 폭파시키는 걸 거기서 직접 그 소리를 들었다고. 수보되어가지고 서울에 와보니까 뭐 엉망이야. 모든 건 엉망진창인데 23일 날 소집영장이 나오더라고. 그래서 잘 됐다 해서, 우리 식구는 식구대로 피란 가고, 난 나대로 또 입대를 한 거지. 12월 23일 날. 면담자 : 군대 배치는 어떻게 되었나요? 백락수 : 그다음 해에, 3월에, 8사단이 재편성하느라고 대구의 농업학교(에) 가 있을 때, 거기로 가서 8사단에 현지 입대를 했어요. 8사단 16연대. 그 중대장이 대대 부관으로 가 있으면서 “정규 사관학교 모집을 하니까 사관학교 가라.”고 나보고서. 그래가지고[그리해서] 지원서를 갖다 냈더라고요. 5월 27일 날 보병학교로 정식 입교했어. 졸업을 하니까 바로 거기다 대구 보충대로 가가지고 군번 받고, 그다음에 배치를 받는데 배속을 하는 거지. 그 2사단에 가서 있다가 32연대로 배속이 됐어. 저격능선전투(는) 소대장으로 겪었고, 백마고지는 부중대장, 부관으로 부관 때 겪었고. 면담자 : 백마고지 전투에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백락수 : 아, 나는 박격포 소대장을 했으니까, 4중대 박격포 소대장을 했으니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지원 사격을 하고.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했다. 참전했다고. 보병부대 소대장들은 한 번 올라갔다 올 것 같으면 예비대로 빠지고, 교대도 하고 그러지만, 나는 교대도 없이 42일 동안을 꼬박 다 전투를 했어요. 백마고지에서는 9사단이 그걸 7일 동안 말이야. 총 합계 9일 동안 전투했지만, 우리는 40일 동안 했는데. 백마고지가 이제 방어전이지 방어. 중공군이 공격해 오는 걸 그걸 물리치고 해서 방어를 했고. 그 저격능선은 우리가 공격을 했어요. 공격전투라고. 그렇게 해서 필요한 고지를 확보했고, 그런 전투인데, 백마고지에 가(서) 했던 전투는, 백마고지가 중요하니까, 그 9사단이 그렇게 해서. 그걸 방어를 해서 확보를 했는데, 그걸 다시 뺏길까 봐서 백마고지에다가 집중 화력을 계획을 하고 있었어요. 군단포 이하 모든 미 7사단, 9사단, 2사단. 3개 사단이 그 백마고지에 집중해서 그 방어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그것이 TOT(Time On Target)라고. 그 포사격으로 막은 거야. 포사격으로. 백마고지 휴전 공세는 TOT 포사격으로 저지했다. 직접 갔다가 마지막에 다 점령하는 것은 보병부대가 나가서, 일선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만. 직접 갔다가 마지막에 다 점령하는 것은 보병부대가 나가서, 일선에서 마지막 마무리를 하지만, 그걸 할 때까지의 모든 조건은, 뒤에서 지원하는, 얼마만큼 지원을 제대로 하느냐? 거기에 따라서 승패가 좌우되는 거거든. 면담자 : 고지에서 맞은 휴전은 어떠셨나요? 백락수 : 나는 고지에 내가 그때 중대 부관을 할 적에 휴전(을) 맞았는데. 며칠 전에, 27일 날 저녁 10시가 되면 “일제 사격 중지! 모든 사격 중지. 그리고 72시간 내에 2km 후방으로 철수.”이런 명령을 받았거든. 그러니까 그날 저녁에, 27일 날 저녁에 10시 전까지 거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그러다 10시가 딱 되니까 거의 딱 꺼진 거예요. 불도 꺼지고, 소리도 없어지고. 그걸 내내 2년 반 동안이나 말이야. 전선에서 듣고 있다가, 딱 꺼지는 순간에 뭐 별천지 온 거 같지. 뭐 지옥에 온 거 갖고 말이야. 그 적막, 갑자기 오는 적막감이. 면담자 : 전쟁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백락수 : 지금 생각하면은 17살, 19살 이때 말이야. 장교가 되어가지고서 그래도 자기의 그 한 사명을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 요새는 30세가 넘어 40세가 됐는데도, 자기 부모 밑에서 말이야. 그것만 쳐다보고 있고 말이야. 그런 무력한 사람들 많이 있잖아. 요새. 그걸 볼 거 같으면,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고. 그 시대에 따라서 그 조류를 잘 타고서 그걸 극복할 것 같으냐는 말이야. 남이 장군이 뭐 16세에 대장부의 역할을 했어. 그건 시대에 따라서 그렇게 한 거고 말이야. 그러니까 나이와 관계없이, 그 시대를 갖다 올바로 인식하고 올바로 적응해 나가고. 거기에 대해서 잘 싸워나가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그 인생도 좌우되고, 그 나라의 운명도 좌우된다고 그렇게 봐요. 면담자 : 후세대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백락수 : 이 기록이 시대를 바로 인식하고, 6·25와 같은 그런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민족이 어떻게 살았는데,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을 교훈 삼아서 나라의 귀한 것을 알고. 나라 사랑할 줄 아는 그런 백성으로 전부 다 살았으면 좋겠어요. 고루한 말 같지만, 고루한 말 같지만 그 말 속에 다 진리가 담겨 있고, 나라 없는 백성들의 설움은 당해봐야 아는 거고. 나라 없이, 부모 없는 자식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되면, 얼마나 다 세계적으로 불행을 당하는 민족들이 많은가? 하는 걸 잘 생각해서 지켜온 나라, 이 나라를 잘 보존해서 지키며 살아가고. 그렇게 해주는 후손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란다고.
구술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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