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김종서

  • 성별

    M

  • 시대

    조선시대

  • 비고

  • 키워드

    흉상, 호국인물, 단종, 조선, 전쟁역사실

약력
    . 출생-사망: 1383-1453 
    . 1405년(태종 5) 문과 급제 
    . 1426년 이조전랑
    . 1433년 함길도도관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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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1433년 함길도 도관찰사(咸吉道都觀察使)가 되어 야인(野人)의 변경침입을 격퇴했고, 6진(鎭)을 설치하여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선을 확정했으며, 1435년 함길도병마절도사(成吉道兵馬節度使)를 겸직, 야인의 정세를 탐지 보고하여 그 비변책(備邊策)을 건의했다. 자는 국경(國聊), 호는 절제(節齊), 본관은 순천(順天), 도총제(都摠制) 추(鍾)의 아들. 1405년(태종 5) 문과(文科)에 급제, 사간원 우정언(司諫院右正言)이 되고, 지평(持平), 집의(執義), 우참찬(右參贊)을 역임했다. 1449년 권제(權踶) 등이 수교(讐校)한 고려사(高麗史)가공정하지 못하여 왕명으로 개찬(改撰)하게 되자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 그 총책임을 맡아 1451년 간행했다. 평안도도절제사(平安道都節制使)를 거쳐 1450년 좌찬성(左贊成)으로 평안도 도체찰사(平安道都體察使)를 겸직, 이듬해 우의정에 오르고, 1452년 세종실록(世宗實錄)의 총재관(摠裁官)을 거쳐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의 편찬을 감수하여 간행했다. 이해 12세의 단종이 즉위하자 좌의정으로 황보인(黃甫仁) • 정분(鄭苯)등과 함께 어린 왕을 보필했다 문종의 유명(遺命)으로 단종을 보필하던 재상가운데 대호(大虎)라는 별명까지 붙은지용(智勇)을 겸비한 명신으로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首陽大君 : 世祖)에 의해 1453년 두 아들과 함께 격살(擊殺), 대역모반죄(大逆謀反罪)로 효시(梟示)됨으로써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제1차 희생자가 되었다. 일찍이 고려사 개찬의 총지휘를 맡았으나 정인지(鄭麟趾)가 총재관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대역모반죄로 말미암아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시조 2수(首)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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