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 구술자

    임정의

  • 구술주제

    아버지의 사진 기록으로 돌아본 6·25전쟁

  • 구술일자

    2022-10-04

  • 영상시간

    10분 24초

  • 구술장소

    전쟁기념관 기증실

  • 주관기관

    전쟁기념관

  • 소개

    임정의 구술자는 임인식 종군 사진대장의 아들로, 작은 아버지 임석제와 부친 임인식 대장의 뒤를 이어 3대째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청암사진건축소를 운영하고 있다. 본 구술 때에는 아버지 임인식 사진대장의 사진과 기록을 통해 6‧25전쟁 당시 국군의 사진 기록과 그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개요

전쟁기념관은 2020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6·25전쟁 참전용사 구술영상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하였다. 구술영상은 이후 전쟁·군사 관련 학술연구 및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며 또한 중·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2022년 올해는 전쟁 직전부터 정전 체제까지 전 시기를 포괄할 수 있는 대상자로 선정하였고, 특히 백마고지 전투 70주년을 맞이하여 전선교착기에 해당되는 '고지전' 중심의 참전자 및 관련자를 선정하였다. 구술영상 인터뷰 질문 내용 역시 구술자 분들의 개인의 위치와 역할에 맞게 진행되었으며 서로 겪으셨던 다양한 전쟁의 기억을 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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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약력

성명임정의

  1. 1995. <세계건축 100년> 전시
  2. 1997. 광주 비엔날레 초대작가
  3. 1997. <점, 선, 면 그리고 공간> 출간
  4. 1998. <세계 문화기행> 출간
  5. 2005. <한국의 공간> 출간
  6. 2008. <서울 타임캡슐을 열다> 출간
  7. 현재 청암건축사진연구소 운영
구술영상 자막
<임정의>
*면담자: 남보람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


면담자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구술자 : 1944년 6월 14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흥록동 1157번지에서 출생을 했는데, 아버님께서 서울로 상경을 하는 바람에, 한 3, 4개월 된 때 나를 데리고 서울 용산 삼각지 로터리에서 이제 시작을 했다고 그러더라고. 그러니까 북한의 고향을 버리고, 서울로 상경을 했어요. 그래서 한미 카메라점이라고, 이제 여기 용산소방서 옆에 대로변에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제 다 옛날보다 도로가 이제 확장이 되어가지고, 많이 이제 없어졌지만 그렇게 지내가지고 온 거예요.

면담자 : 아버지 임인식 작가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구술자 : 아버지 자랑. 아들이 자랑하는 것보다도 실제로 이야기를 드리면 임인식이라 그래가지고 범 인 자예요. 그게 호랑이 같은 아버지였어요. 옛날부터 굉장히 좀 엄격하고, 성격도 굉장히 좀 무서웠어요. 어디 나갔다 오시면 굉장히 호랑이 같아가지고, 우리가 이제 어렸을 때 좀 약간 무서움을 많이 탔는데.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이런 기록이라든가? 이런 이제 군대식으로 말하면, 굉장히 철두철미하게 이런 사진 분야에서, 그런 기록이라든가? 아키비스트 역할을 많이 한 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도, 제주도 4·3 사건이라든가 여순 반란 사건이라든가. 이런 기록들을[기록을] 드문드문하면서, 서울에서 이제 좌우가 대립되는[하는] 과정이라든가.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사진의 역사적인 그런 현장에서 사진을 많이 기록을 해놨죠. 그다음에 이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과정이라든가, 또 이제 육사 들어갔다가 6·25 종군하면서 사진대장을 맡으면서 이제 그런 기록들을[기록을] 쭉 해놓은 거에 대해서. 이거는 한 가정,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요한 역사죠. 그런데 그걸 잘못해서 어떤 사람들은 “개인 전시하면, 개인전 아니냐?”이런 식으로 생각하는데 그거는 잘못된 거고. 아버님의 이제 중요한 역사적인 사진들을 제가 잘 보관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그냥 자랑할 것보다는 굉장히 그 사진의 역할에서, 굉장히 많은 중요한 기록들을[기록을] 남겨놓은 거에 대해서 저는 굉장히 자랑스럽고, 이런 아버님을 가지고 있다는 거는. 참 굉장히 의미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지니고] 있습니다.

면담자 : 아버님은 6·25전쟁 당일을 기억하고 계셨나요?
구술자 : 아버님 일기 보면 “6월 25일 날 전화벨 소리가 요란하였다. 각 언론, 신문사·통신사에서 문의 전화가 왔다. 보도과장 김 무슨(김현철) 중령과 회의가 시작되었다. 개성 옹진지구를 비롯, 38선 전 지역에 남침이 개시하였다고 말하였다. 각 신문·통신사의 종군 기자들에게 국방부 출입 연락하며 모두 소집이 되었다. 임 중위는 개성 지구로 종군 기자들을 인솔하라는 명령이 있다. 11시경 화물트럭 한 대에 열세 명의 기자를 조선일보 윤거정, 동아일보 김진섭(을) 태우고 문산을 통과. 임진강 쪽으로 갈라지는 도로에서, 육군 1사단 단장 백선엽 대령이 탄 지프차와 마주쳤다. 정지하라는 명령이었다. 개성에는 못 들어간다고 하셨어. 1사단 전방지휘소가 설치되었으니 문산 지방. 국민학교에 가서 기다리라고 하며 만나주지 않고 급히 떠나버렸다. 전방지휘소를 찾으니 국민학교 교실이었다. 통신병들이 무선 통화가 바쁘다. 유선 통화는 안 되는 모양. 통신병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한 시간, 두 시간 기다리는 사단장은 면회를 안 시켜주고, 참모들은 바쁘게 행동하고 있었다.”

면담자 : 아버님이 아끼셨던 사진이 무엇이었나요?
구술자 : 글쎄요. 그러니까 아버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남하하면서 포항, 대구, 마산 이쪽이 마지막 최전선. 다부동 전투부터 시작해가지고, 포항 안강 전투에서 이제 학도병. 군번 없는 학도병을, 훈련도 얼마 안 되어가지고 쓰리쿼터라고 있어요. 군용 지프차에 타가지고 전선으로 향하는데 젊은 친구들이죠. 뭐, 고등학교 1학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군번 없는 학생들. 가장 저한테 항상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참 저렇게 순진하고 탈 없는 애들이 전선에 가서 희생당하는 것들을 보면서.” 가장 나한테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중의 하나예요.

면담자 : 6·25전쟁 시기의 보도사진에서 국가별 특징을 알 수 있나요?
구술자 : 그러니까 이 보도사진은 종군작가들이, 미국 사람이 찍었다. 예를 들어서. 그럼 미국 사람 위주로 찍는 거예요. 자기 나라 미국 사람을 위해서 찍는 거고 우리 한국 사람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한국인이 보는 눈을 가져야 되는데 완전히 틀려요[달라요.] 중국에서,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왔다. 미군이 몇 명 죽었는지, 장진호에서 죽었는지. 자기네 승리해가지고 희생당한 거 전혀 알려주지도 않고, 자기네가 잘했다는 이야기. 그냥 완전히 우리가 보는 거 하고 완전히 틀려요. 그건 아버님께서는 이런 사진들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뭐냐면, 우리가 가장 쉽게 중간 입장에서 제대로 정확하게 전해줘야 되는데, 다 자기네 위주로 이제 하다 보니까 우리하고는 완전히 틀리죠. 아버님은 그런 거를 가장 중요한 게 생각하는 게 상대방도 이해해 주면서, 우리가 보는 거를 제대로 전해줘야 되는 이런 문제가 있어요. 외국에서 만든다는 거는 우리하고는 완전히 틀려요. 그러니까 이거는 그냥 전쟁 있는 그 사실을 그대로 전해줄 뿐이지. 우리하고는 완전히 생각하는 게 다른 모습들이죠.

면담자 : 3대가 이어져 사진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구술자 : 굉장히 좀 어려운 질문 같은데. 굉장히 부담스럽기도 하고. 아버님께서는 저에게, 아버님은 이제 전쟁이라든가, 다큐멘터리 기록 사진들을 하다 보니까 이게 돈하고는 연관이 안 돼요. 그게 참 어렵다 보니까 (제가) 사진하지 못하게 했어요. 사진을 못하게 했는데 제가 ‘이건 사진이 아니고 건축입니다.’이런 식으로 이제 건축 사진을 좀 시작을 했고. 저희[우리] 아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아들한테도 사진을 못하게 한 게, 저도 주로 이제 다큐멘터리라든가 주로 이제 없어지는 그런 도시에 기록들을[기록을] 이제 쭉 하다보니까, 돈 하고는 좀 거리가 먼 거 아닌가? 해가지고, 아들한테도 좀 못하게 했는데 어떻게 이제 몰래 (아들이) 미국으로 도망을 갔어요. 미국으로. 그래가지고 자기가 비자 만들어 가지고, 미국에 가서 참! (웃음) 할 수 없이 그냥 원하는 대로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3대가 뭐 했다는 거는 사실 기록적인 측면, 한 집안에서 아버님은 이제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부터 6·25 한국. 어렵게 사는 5~60년대 그런 과정을 찍었다면, 저는 아무래도, 저도 건축과 도시에 관련된 도시의 잘못된 거 올림픽 하면서, 아시안게임 하면서 많이 재개발하는 그런 기록물을 많이 찍어놨죠. 그러니까 이게 돈하고는 좀 거리가 멀다 보니까 남들이 이제 선호를 안 해요. 그 바람에 제가 중요한 걸 많이 기록을 남겼는데, ‘미래는 뭐냐 하면, 굉장히 중요한 콘텐츠를 많이 만들어 놔야 되는 게 중요하지 않나?’해가지고, 제가 이제 못하게 해도 참 다행스럽게 잘했다고. 저는 자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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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의 작가(임인식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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