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 구술자

    박옥선

  • 구술주제

    간호장교 2기, 6.25전쟁

  • 구술일자

    2021-07-12

  • 영상시간

    8분 21초

  • 구술장소

    전쟁기념관 2층 6.25전쟁실2

  • 주관기관

    전쟁기념관

  • 소개

    6·25전쟁 당시 육군 군의학교에 지원하여 간호장교로 발령받아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이후에도 보훈병원과 석탄공사 종합병원에서 근무를 하면서 평생 환자를 돌보고 봉사하셨다.

개요

전쟁기념관은 2020년 시범사업을 시작으로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6·25전쟁 참전용사 구술영상 아카이브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구술영상은 이후 전쟁·군사 관련 학술연구 및 기초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며 또한 중·장기적 플랜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운용할 계획이다. 올 해 구술자로 선정된 분들은 다양한 방면에 소속되어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다. 이 분들은 각자 간호장교, 카투사, 의용군 그리고 학도병으로서 전쟁에 참여하셨다. 구술영상 인터뷰 질문 내용 역시 구술자 분들의 개인의 위치와 역할에 맞게 진행했으며 서로 겪으셨던 다양한 전쟁의 기억을 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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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약력

성명박옥선

  1. 1935 서울시 출생
  2. 1951 육군 군의학교 지원
  3. 1953 간호장교 임관
  4. - 6.25전쟁 참전 유공자회 종로구지회장
구술영상 자막
<박옥선>
1. 선생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이름은 박옥선이고 생년월일 35년 9월 20일, 서울 태생입니다.

2.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50년 6월 25일이 주일인데 그날이 주일이기 때문에 하복 맞추러 가다가 서대문에 가면은 옛날에 지금 평화신문 자리가 동양극장 자리에요. 거기까지 갔는데 삐라가 이제 하늘에서 지금 같으면 그런 비행기가 없어요. 잠자리비행기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삐라를 뿌리는 걸 주워보니까는 38선이 무너졌다고 휴가 나오고 외박 나온 군인들은 일제히 다 귀대를 하라고 일반 시민 집에 들어가서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라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 걸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3. 피란중 상황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28일 날 새벽 2시부터 3시 사이에 큰 광음이 터져가지고 그 터지는 소리가 꼭 날벼락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벼락불도 떨어진 것 같은데 그게 바로 인도 즉 영등포 노량진 다리 그걸 끊어지는 그 순간이 그런 소리가 들려가지고 한참 있다가 아버지 새벽에 들어오시더니 피란 가야 한다고 그래서, 그래서 피란을 떠났습니다.

4. 육군 군의학교를 어떻게 알고 지원하게 되신건가요? 
  그 당시만 하더라도 여군이 뭔지는 몰랐죠 우리는. 근데 여군 두 분이 들어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뭐냐면 당신네들은 지금 편안하게 공부를 하지만 전방에서는 지금 죽어가는 병사들이 많이 있는데 손이 모자라서 치료를 못한다. 공부보다 나라를 위해서 더 그렇지만 시험을 봐서 간호장교로 입교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설명을 하더라고요. 그래 이제 우리 학교에서 9명이 지원을 해가지고 9명이 다 합격을 해서 가게 됐었습니다. 그것이 51년 4월 23일이었는데 집에는 말을 안 했죠. 왜 그러냐면은 제가 외동딸이었었거든요. 그러니까는 부모님들 반대가 뻔한 건데 어떻게 간다고 하겠어요. 엄마한테만 그냥 살짝 귀띔을 해서 엄마 내가 갈 텐데 아버지한텐 얘기하지 말고 엄마만 알고 있어. 그랬더니 내가 가는 도중에 벌써 아버지가 와계시더라고요. 서울역에. 너무 한심스러워가지고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난 아버지한테 1년만 갔다 오겠다고 그랬더니 1년도 안 된다 그러시더라고. 그래 아버지 내가 안 가면 아버지하고 엄마하고 다 붙잡혀가 안 돼. 그러니깐 내가 1년만 갔다 올 테니까 아버지 참아. 그랬더니 네 고집을 누가 막느냐고 할 수 없다고 그러시고 돌아섰는데 보니까는 눈물이 나시더라고. 그게 아버지 마지막이었었어요. 내가 군에 있으면서 아버지 돌아가셔가지고 임종도 못하고 지금까지 가슴이 아픈 거야.

5.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신가요? 
  군의학교 가서는 이제 저는 그 의과 계통은 일절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에요. 원래는 여자지만 일하고 싶었던게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이제 공부를 그쪽으로 많이 해가지고선 공부를 하게 됐는데 군의학교 가니깐 1년 내내 의과 계통만 이제 공부를 하게 된 거죠. 거기서 우리가 맨 처음 가니까 150명인데 시험을 보고 또 시험을 보고 해서 떨어져가지고 92명만이 졸업을 하게 됐었죠.
  3년 동안에 이제 학과로 2년 받고 1년 동안은 군사훈련을 받았어요.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오른쪽 귀에 고막이 터졌어요. 훈련받는 도중에 수류탄을 이렇게 던지는데 이게 내 머리 위에서 터져가지고 내가 고막이 터졌어요. 그래서 이 왼쪽 귀는 제가 지금 듣질 못해요. 나이를 먹으니까 이게 이쪽 귀까지도 이제 조금 망가지는 상태에요.

6. 전쟁중에 어떤 임무를 맡으셨나요? 
  중위 임관해가지고서 서울에 저기 부산으로 왔을 때 부산 제3 육군병원으로 왔거든요 제3 육군병원에 있다가 제1 육군병원으로 갔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백두산, 호랑이 부대 뭐 이런 명(부대 이름) 있었죠. 그때 이제 고성에 있는 화천전투 같은 거 그런 데서 전투가 심했을 때는 중환자가 많이 들어오고 또 전투가 좀 수월하면은 경환자가 많이 들어오고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가 미군한테 후원을 받을 때기 때문에 약품이 있으면 치료를 하고 약품이 없으면 치료를 못했어요. 그런 걸 봤을 때 대한민국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알고 간호장교들이 서로 협력해서 약을 아껴 쓰고 아껴 쓰고 해가지고 치료를 했고 중환자는 중환자대로 경환자는 경환자대로 간호장교들이 다 분리를 했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그래 이제 그걸 보고 났을 때 정말 대한민국이 너무 열악하다는 걸 우리가 깨달았죠.

7. 병원, 병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치료를 했나요? 
  보급을 받아야 하는데 못 받을 때는 치료를 못하죠. 그러니깐 중환자들이 그냥 애매하게 정말 가슴 아프게 죽은 사람도 많이 있고 치료를 못해서 많이 상한 사람도 있고 더구나 외과 근무할 때는 그걸 제일 많이 느껴요. 여기를 치료해야 할 텐데 여기 치료를 못하니까 여길 잘라야 해. 왜냐면 피를 타고 이제 올라가니깐. 그리고 6․25전쟁이 여름 아니에요  여름철에 그 금방 썩어요 이거. 그러니까 치료할 약이 없으면 여기를 잘라야 할 텐데 여길 잘라야하고 여길 잘라야 할 걸 여길 잘라야 하고 여길 자를 걸 여길 잘라야 하고 그러니까 6․25전쟁 때 애매하게 상이군인이 많았어요. 상이군인이 정말 많았어요. 지금쯤은 약이 좋아가지고서 상이군인이 별로 없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약을 미국에서 보급을 받아야 하니까는 보급을 못 받으면 그냥 죽는 거에요. 그게 제일 안타깝죠. 지금도 생각하면은. 

8. 다시 태어나도 간호장교에 지원하실건가요? 
  저는 후회는 안 합니다. 지금이라도 부르면 이제라도 가서 일할 것 같아요. 왜, 남이 하지 못했던 걸 했기 때문에. 저는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 남자도 못했던 일을 했지 않습니까. 그 당시만 해도 여군이라면은 군복 입은 사람 보면 무슨 원숭이 보듯이 놀리고 이게 있었어요. 여자가 군복 입었다고. 근데 그걸 개의치 않고 전 그냥 사복을 안 입고 군복 입고 다녔으니까는 떳떳한 것 같습니다. 지금.

9.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후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보훈처에서 각 지회마다 한 1년이면 한 7군데 학교를 6․25전쟁 참전 교육을 시키러 가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보다도 초등학교(초등학교) 4, 5학년 학생들이 더 열심히 해요. 근데 그걸 봤을 때 우리 학부모들이 6․25전쟁을 알아야겠어요. 왜 그러냐면 내가 가서 강의하는 거보다 부모님이 집에서 식사시간이라든지 휴게시간에 또한 그 가족들 모임 중에서 6․25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다는 자녀들한테 말했을 때 그것이 더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면 부모 말은 자식들이 귀담아듣거든요. 

10.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두 번 다시 6.25 같은 그런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린 생명들을 생각해서라도 나이 먹은 어른들이 다시 한 번 생각을 깊이 해가지고 이 나라에 오직 화평과 평강과 온유가 인내만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전쟁은 끝나지 않은 상태고 아직까지도 전쟁은 계속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참 좋은 나라 복된 나라 희망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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