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 구술자

    이배선

  • 구술주제

    공군 / 6·25전쟁

  • 구술일자

    2019-07-13

  • 영상시간

    12분 40초

  • 구술장소

    전쟁기념관 3층 국군무기발전실

  • 주관기관

    전쟁기념관

  • 소개

    이배선 공군 대령은 1949년 공군사관학교 1기생으로 입교하여 대한민국 공군사관학교가 배출한 최초의 조종사이다. 6·25전쟁 중 총 92회 출격을 하였고 6·25전쟁 항공작전의 출격기록들을 <출격일지>로 남겨두었다. 공군사관학교 입교, 6·25전쟁 중 강릉기지에서의 첫 출격, 그리고 임택순 전우 등 희생된 동료에 대한 기억 등을 구술하였다.

개요

전쟁기념관은 ‘전쟁에 관한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전쟁의 교훈을 통하여 전쟁예방과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요 전쟁 참전용사, 전쟁·군사 관련 주요 인물, 유물기증자 등에 대한 구술기록을 생산·관리하는 구술영상 아카이브 구축 사업을 기획하였다. 2020년은 6·25전쟁 70주년을 기념하여 육군·해군·공군 각 군별 참전용사 1명씩을 대상으로 구술채록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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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 약력

성명이배선

  1. 1931 함흥 출생
  2. 1949.03 공군 입대
  3. 1949.06 공군 사관학교 1기생 입교
  4. 1950 6·25전쟁 92회 출격
  5. 1967 김해 공군비행학교 교장 재직
  6. 1970.04 대령 예편
  7. 1970~1990 대한항공 수석기장
구술영상 자막
<이배선>
1. 구술자 소개
공군예비역 이배선 대령입니다. 1931년도 6월 28일 생입니다. 
고향은 북한에서 두 번째 큰 함흥 이란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2. 1948년, 월남과 공군사관학교 입교
1948년도면 이북에서 이남으로 월남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시기에요. 그 전에 온 사람은 쉽게 넘어왔지만 그 당시(1948년)에는 아주 경비가 심해서 굉장히 어려운 길이 됐어요. 1948년 11월 10일 경에 서울에 도착해서 형님하고 상의한 끝에 공군, 하늘에 대한 동경심 이런 것이 주 이유가 돼서 내가 공군에 입대 하겠다고 형님과 상의 후 결정해서 1949년 2월 공군에 지원해서 합격이 돼서 훈련을 받았어요. 제가 기상분과로 배속돼서 있다가 공군사관학교 응모시험이 6월에 있다는 공고를 보고 여기에 한번 응시해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응시해서 합격해가지고 6월 10일에 공군사관학교 입교를 했는데 그 당시는 육군항공사관학교, 공군이 독립이 안 된 그런 때였습니다. 
3. 6·25전쟁 첫 날의 기억
1950년에 6·25전쟁이 난 날은 일요일이었어요, 6월 25일. 사관후보생 때 한 달에 한두 번 있는 외출로 24일 토요일에 외출을 나갔어요. 외출을 하면 이남에 있는 형을 꼭 만나서 같이 저녁 먹고 대화를 했어요. 직계는 둘밖에 없었으니까요. 큰 고모 집에서 자고 일어나서 아침 10시 반쯤 작은 고모네 북아현동 쪽으로 인사를 간다고 나왔어요. 지금 필동, 오장동 그 근방입니다. 그 근방을 지나는데 거기에 중구 경찰서가 있었어요. 그 앞에 보니까 큰 표지판이 있는데 ‘이북 공산군 38선 침략 점령. 현역 군인들 즉시 원대 복귀하라’ 붙어 있더라고요. ‘모처럼 외출 나왔는데 나는 좀 이따가 들어간다.’하고 형하고 같이 서대문로터리로 갔어요. 그 로터리에 가니까 짚차에서 확성기를 대고 아우성, 절규하는 스피커 소리로 방송을 하는 거예요. ‘이게 심상치 않다. 가야 되겠다.’하고 형이랑 거기서 헤어진 거예요. 부대에 들어가니까 하는 얘기가 즉시 김포비행장에서 작업을 시작하라는 거예요. 비행기 연료가 중요하니까 연료 소개(疏開)시키는 작업을 하고 부대로 들어오는데 행진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북 적기가 기총 사격을 해서 부대 행동을 하고 들어오다가 옆에 보리밭에 은폐하고 피신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 또 한 번 공격을 받았어요. 첫 날, 6월 25일 개전 날 지상군은 지상군대로 공격을 했지만 벌써 그 사람들은 전투기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할 그럴 능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쪽은 아무것도 없었어.
4. 공군사관학교 졸업과 비행훈련 수료 
그 당시 공군사관학교는 공사 3기까지는 2년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1951년 7월에 졸업을 해서 4개월 후에 비행 훈련을 시작했던 거예요. 이때까지 조직적인 훈련이나 조종사 양성을 위한 비행 훈련은 없었습니다. 우리보다 위에 조종 간부 1기부터 사관학교 1기까지 1952년 1월부터 1952년 11월까지 비행훈련을 받고 비행훈련 조종사가 전투조종사가 됐어요. 그 당시는 미군 수송기를 타고 13명이 강릉으로 전쟁을 하러 갔어요. 50분 ~ 1시간 비행 동안 사천에서 강릉까지 13명은 아주 마음이 그랬어요. 긴장해서 얼굴이 굳어가지고 새로운 길, 미지의 시간 속으로 가는 일종의 두려움과 불안감 이런 것 때문에 서로 말도 안하고 그랬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이 나요.
5. 첫 출격의 기억 
내가 출격 92회 동안에 기억에 나는 몇 가지 중에 하나가 첫 출격 때에요. 잊혀 지지가 않지요.
편대장, 위에 선배들이 첫 출격 나갈 때 유의해야 되는 것을 상당히 강조해줬어요. 비행기를 놓치지 말라고. 서로 16대 비행기가 공격을 하니까 어느 게 어느 건지 모를 수 있지. 그럴 때 열심히 따라다니라고 했어요. 그리고 목표로 가는 도중에 우리 첫 목표가 사리원 쪽이었는데 철원을 지나가는데 곡사포가 펑 터졌어요. 곡사포가 펑. 그러자 비행기 16대가 전부 우측으로 갔어요. 그러니까 또 우측에서 펑 터졌어요.
6. 휴전하던 날 마지막 비행을 마치며
항상 비행기 나가기 전에 점검할 때 ‘오늘도 잘 부탁한다.’ 비행기를 어루만지면서 점검을 하고
이게 마지막 출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두 번, 세 번 했어요. 7월 27일, 그날도 세 번 출격을 나갔어요. 다 끝나고 세 번째 발동기를 끄고 나서 하는 일은 비행기 장비 시간 얼마 이렇게 기록을 했어요. 내가 약식모자가 있어요. 헬멧을 쓰고 약식 모자를 넣고 다니다가 거기에 오늘 출격 횟수 92에 짝대기를 내려 긋는 거예요. 다 쓰고 나서 정비사가 올라와서 ‘이 중위님,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눈물이 흐를 정도로 ‘당신 뿐 만 아니라 무장, 공군 전 장병의 열성이 없었으면 오늘 이 출격 횟수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거예요. 내 기쁨과 영광을 같이 나누고 싶다.’ 하는 말을 하고 싶었고 내가 그 정비사 손을 잡고 그 말을 했던 게 참 기억에 남아요
7. 故 임택순 전우
비행 중 92회 동안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첫 출격, 마지막 비행 끝났을 때 그리고 임택순 중위에요. 우리 임택순 중위가 사관학교 1기 동기생이에요. 1기생 중에서 처음으로 적지에 나가서 전사한 동기. 그것도 나랑 같이 나갔을 때 전사했어요. 내 앞에서 공격을 했는데 땅에서 큰 폭발이 났기 때문에 ‘혹시 다른 목표를 잘못 찍었구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비행기 한 대가 안 보였어요. 뒤에 딱 붙어서 가야되는데. 공격이 끝나고 집합을 했는데 비행기 한 대가 없는 거예요. 혹시 아까 폭발 때문인가 다시 가보자 해서 보니까 아직까지 비행기가 타고 있더라고요. 그때가 되니까 내가 내 정신이 없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어요. 출격일지에 뭐라고 썼나하면 ‘내가 어떻게 착륙한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서야’ ‘전투조종사가 될 수 있겠느냐. 이런 것은 극복을 해야지.’ 하는 내용을 반성문 비슷하게 적었어요.  
8. 조종사 출격일지 
<출격일지>는 92회 동안에 내가 매일 출격을 나갔다 오면서 오늘 무엇을 잘못했고 잘했는지 적은 거예요. 잘했다는 것은 목표를 잘 맞히면 잘하는 거고, 빨리 목표를 찾아가면 잘하는 거예요. 그런 것을 1회부터 92회까지 기록을 했어요. 노트 두 권으로 돼있어요. 오늘의 목표, 목표의 종류, 사단본부, 보급물 집결소, 탱크 엄호, 병력 엄호, 주위 지형 그리고 오늘의 소감 이런 것들을 적었어요. 저런 것을 쓴 사람은 없을 거예요. 내일 조금 더 잘해보려고 오늘을 반성해본다 하는 의미로 출격일지를 작성했어요. 
9. 인터뷰를 마치며  
제가 쓴 출격일지의 서문을 읽으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전투 즉 교육이다. 이 때 많이 배워둬라. 항상 주동적 판단은 너의 실력을 등비 급수적으로 증가시킬 것이다. 만일 네가 지휘관이 된다면 여러 가지 지형과 다방면의 대공포의 위치에 따르는 공격 요령을 잘 파악함으로써
너의 부하를 살릴 것이다. 이것을 배우는 때는 바로 현재이다. 많이 공부하라. 이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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